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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7 10:59 아름다운 주택이야기

프랑스 남동부 해안에 있고 지중해 연안

을 끼고 있는 휴양지 코트다쥐르에 있는

럭셔리 빌라입니다.

 

posted by A-TACT A-tact
2013.02.20 12:48 아름다운 주택이야기

네덜란드에 위치하고 있는 스타일리쉬한

주말별장 입니다.

 

posted by A-TACT A-tact
2013.02.19 14:28 아름다운 주택이야기
2013.02.14 13:19 아름다운 주택이야기

 

과연 아파트와 한옥을 결합할 수 있을까? 층고를 높이고 내부에 툇마루와 중앙정원을 설치하고 한지로 창과 문을 만들면 비록 겉은 아파트지만 안에 사는 사람은 마치 한옥에 사는 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한옥에 사용하는 나무와 황토를 사용하고 거실을 대청 마루로 바꾼 뒤 안방과 문간방을 만들면 더욱 완벽하게 한옥의 조건을 갖추게 되는데, 이런 설계와 디자인을 아파트에도 실현시킬 수 있을까? 이런 의문과 관련해 올해 1월 구(舊) 대한주택공사(지난 10월 대한주택공사와 한국토지공사가 통합돼 한국토지주택공사로 바뀌었음)는 의미 있는 자료를 발표했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한(韓)-스타일 육성 정책’에 따라 개발한 한옥 아파트의 모습을 전격 공개한 것이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실현된다면 우리나라 아파트 문화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획기적인 사건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한-스타일 육성 정책’은 한국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한옥 외에 한글과 한식, 한복, 한옥, 한지, 한국음악 등 6가지 대표 상품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 1 한옥 아파트 주동 디자인
  • 2 한옥 아파트 주거동 저층부
  •  

    이날 발표된 한옥 아파트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요소를 담고 있다. 여러 부문에서 한옥과 아파트의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한옥 아파트 마을을 구현하고 전통적인 옥외 시설물을 설치하는 것을 비롯해 주거동의 기단부와 외벽, 단위 세대의 평면과 인테리어, 부대시설에 한옥의 특성을 접목했다. 우선 전통 한옥 마을 느낌을 전달하기 위해 건물 외관을 한옥과 유사한 모양으로 설계했다. 각 세대의 발코니를 앞마당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고 모든 건물 옥상을 기와지붕으로 덮었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면 기와 집들이 옆으로 즐비하게 붙어 있는 전통 한옥 마을의 모습을 연출한다. 아파트 각 동의 하단부는 한옥 대문의 디자인을 모방하고 있으며 문주 역시 한옥 스타일을 따랐다. 한옥 아파트인 만큼 옥외 시설물로 열주와 전통적인 모양의 담장 등을 설치하고 단지에는 한옥 마을에서 볼 수 있는 골목길과 공터를 조성해 놓았다. 단지 내 바닥도 밋밋한 아스팔트나 보도블록이 아니다. 전통 문양이 새겨져 있어 한옥 마을의 푸근한 느낌을 전달한다. 주거동의 외벽 역시 사괴석과 전통 벽돌을 사용해 한옥 마을을 재연해 놓은 모습이다. 노인과 마을 어른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사모정(네모 반듯한 정자)을 비롯해 전통 놀이시설 등도 단지 안에 들어선다. 외관 측면에서 건물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 외에 한옥과 다른 점이 별로 없는 셈이다.

  • 1 한옥 마을 조감도
  • 2 실내로 들어온 누마루
  • 하지만 한옥 아파트의 매력은 단지 외부보다는 내부에 있다. 일반 아파트와 달리 내부를 나무, 황토와 같은 자연 친화적 자재를 사용한 것은 물론이고 거실과 발코니 공간에 마당 개념을 도입했다. 또 사랑방과 대청 마루 공간을 별도로 마련하고 문과 창문 등에 전통 문양을 넣었다. 화장실이 멀고 부엌과 거실이 분리되어 불편한 한옥의 단점들은 발전적으로 극복된다. 주택공사 관계자는 “우아하고 넉넉하며 환경친화적인 한옥의 장점을 살리면서 생활의 편리함이 강점인 아파트의 이점도 취하는 것이 한옥 아파트 설계의 목적”이라며 “한옥과 아파트의 발전적인 결합이라는 측면에서 주거 문화의 진화라고도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주택공사는 경기도 시흥 목감 택지개발지구 B-1블록에 11~20층 고층형 722가구의 한옥 아파트 시범단지를 조성할 계획이다. 지난해 사업 승인을 받았으며 올해 말까지 기본설계를 끝내고 내년 상반기 실시 설계에 이어 하반기 착공에 들어간다. 이와 함께 전주시 덕진구 만성동 400번지 일대에는 저층형 한옥 공동주택 마을을 조성하기로 했다.

     

     

    한옥 아파트가 풀어야 할 과제

    그러나 한옥 아파트가 보편적인 공동 주택 단지로 자리 잡으려면 상당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걸림돌은 경제적인 문제다. 일반 아파트를 건설할 때에 비해 최소 10%, 최대 50% 이상 건축 비용이 높아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건설업체가 일방적으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수요자의 요구에 따른 주문 제작이면 건축비가 2배 이상 들어갈 수도 있다. 건설사가 일괄 시공한다 해도 다양한 평면과 디자인을 설계해야 하기 때문에 싼값에 공급하기는 불가능하다. 관리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통 정자나 담장은 기존 아파트 단지 내 시설에 비해 원형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이런 시설을 잘 보존하고 유지하려면 적지 않은 관리비가 들어갈 것이고 이는 입주민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한옥 아파트에 대한 개념도 아직 확실하게 정립돼 있지 않은 상태다. 주택공사에서 내놓은 청사진이 그럴 듯하지만, 실행 과정에서 이런저런 문제점이 드러날 수 있다. 그럴 때마다 개념과 설계를 바꾸다 보면 한옥 고유의 특성이 결국 희석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옥 아파트는 천편일률적인 우리나라 공동주택 문화에 일대 혁신을 줄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예상되는 문제점을 감안해 좀 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대응해 나간다면, 한옥은 우리 조상들에게는 생소했던 아파트와 결합해 한국인의 주거공간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이다.

     

     

     

     

    posted by A-TACT A-tact
    2013.02.14 11:43 아름다운 주택이야기

     

    알프스 이북의 르네상스 건축은 이탈리아에 비해 많이 늦었으며 내용에서도 이탈리아 원본과 차이가 많이 났다. 프랑스, 영국, 독일 모두 고딕이 융성했던 나라로서 중세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16세기에 들어 알프스 이북에도 르네상스 건축이 조금씩 등장하기 시작했다. 독자적 창출은 아니었고 이탈리아에서 전파된 것이었다.

    세를리오와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의 성립

    프랑스가 제일 빨랐다. 지리, 인종, 언어,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이탈리아와 가까웠을 뿐 아니라 이미 로마 시대부터 전 국토가 속주에 편입되어 고전주의를 경험한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거부감이 적었다. 롬바르디아를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있었고 종교개혁의 여파가 적었기 때문에 교황청이 주도하던 르네상스 표준 고전주의를 적극 수입할 수 있었다.


    프랑수아 1세(재위 1515~47)가 문을 열었다. 르네상스 애호가여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세를리오를 초빙하는 등 르네상스 수입에 적극적이었다. 가장 중요한 인물은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Sebastiano Serlio, 1475~1553 혹은 1555)였다. 1541년에 프랑스로 이주해서 프랑수아 1세의 수석 화가 겸 건축가가 되었으며 토네레(Tonnerre)의 앙시 르 프랑(Ancy-le-Franc, 1546년경) 성채를 대표작으로 남겼다. 프랑스에 최초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표준 양식으로 지어진 건물이었으며 부분적으로 프랑스 전통 양식을 혼합한 점에서 향후 프랑스 르네상스의 전개 방향을 결정지은 중요성을 갖는다.

     

    세바스티아노 세를리오. 앙시 르 프랑 성채. 프랑스 르네상스의 본격적인 등장은 이탈리아 건축가 세를리오가 이주해서 르네상스 고전주의를 전파하면서부터였다.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오더 체계를 중심으로 구사했다. 벽면은 도리스식을 변형한 벽기둥으로 분할했고 출입문 차양은 코린트식을 변형한 독립 원형기둥으로 처리했다. 바탕 벽면에서 중세 장식을 완전히 제거해서 오더의 정확성과 고전적 의미를 높였다. 프랑스 전통 양식은 경사 지붕, 굴뚝, 측랑을 갖는 5분법 등이었다. 모두 이탈리아 고전주의에는 없던 서북유럽의 전통적인 구성방식이었다. 출입문 위쪽 벽면 등 부분적으로 매너리즘 기법을 이용해서 아치와 프랑스 전통 장식을 혼합한 새로운 장식 어휘를 창출했다.

     

     

    들로름의 아네 성채와 프랑스 르네상스의 완성

    세를리오가 다녀간 이후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은 피에르 레스코필리베르 들로름(Philibert de l'Orme, 1510년경~70)을 거쳐 완성 단계에 접어 들었으며 이후 뒤 세르소 가문으로 이어졌다. 제일 중요한 인물은 들로름이었다.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철거, 파괴 되는 등 대부분은 보존상태가 좋지 않은데 대표작은 아네 성채(Chateau de Anet, 1547~55)와 슈농소의 화랑 다리(Pont Galerie, 1556~59)이다.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가로는 최초로 이론서도 남겼는데 [건축 제1서(Le premier Tome d'Architecture(1567))가 대표작이다.

     

     

    필리베르 들로름. 아네 성채 정문 출입구.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모습으로, 프랑스 중세 성채 구성을 고전주의로 다듬은 건물이다.

     

     

    필리베르 들로름. 아네 성채 예배당. 드럼과 돔만으로 이루어진 특이한 중앙 집중 형 건물로 고전 어휘는 출입구에 부분적으로 부속되어 있다.

    들로름의 건축은 매우 독특해서 이탈리아 고전주의와는 많이 달랐으며 비슷한 예를 찾기 힘들 정도로 특이한 생김새를 보여준다. 개인적 독창성이 크게 작용했으며 프랑스다운 전통을 가미했다. 아네 성채가 좋은 예로, 출입문과 예배당이 중심 건물이었다. 출입문은 로마의 개선 아치를 기본 모티브로 삼아 매너리즘으로 각색했다. 개선 아치의 구성과 부재의 위치는 고전주의 표준형을 구사했다. 매너리즘은 프랑스 중세 전통과 장식을 혼용하는 방식으로 구사했다. 오더 자체가 고전주의 표준형 다섯 가지에는 없는 새로운 형식으로 그가 찾고자 했던 프랑스 오더의 한 종류를 제시한 것이다. 가장 두드러진 처리는 수직 구성으로 ‘오더-아치-지붕’의 세 단계로 이루어졌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점차 좁아지면서 하늘을 향한 수직성을 표현했다. 수직성은 프랑스의 중세 전통이었다.


    예배당은 프랑스 최초의 중앙 집중형 건물이다. 원형 중심부를 정사각형 윤곽이 싸는 구성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에는 없던 새로운 유형이었다. 돔도 이탈리아에서 유행하던 펜던티브 방식이 아니라 로마의 원형무덤이나 판테온 방식이었다. 외관도 이탈리아에서는 실내 구성과 별도로 개선아치와 신전 박공 등의 고전 어휘로 치장하는 것이 통례인데 반해 여기에서는 실내 구성을 그대로 반영했다. 그 위에 엔타블러쳐를 단순화한 수평 띠, 아치, 박공 등의 고전 어휘를 더했다. 출입문과 마찬가지로 수직성을 이용해서 중세 전통을 표현했다. 드럼과 랜턴의 높이를 인위적으로 높였으며 첨탑 두 개를 더했다.

     

     

    이니고 존스와 영국 르네상스

    영국의 르네상스 건축은 프랑스보다 1세기 가량 늦어서 1600년이 되어야 시작되었다. 고딕 양식이 늦게 계속되었으며 이탈리아와 지리적으로 멀었다. 종교개혁의 여파 때문에 1534년에 교황청과 단절되는 등 가톨릭 로마와의 교류가 어려웠다.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1603)때부터 권력층의 성채나 생활환경 등에서 이탈리아 풍이 유행하는 형식으로 르네상스 건축이 단편적으로 등장했지만 양식 운동은 17세기나 되어야 나타났다. 자연스러운 예술운동이 아니라 왕권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시작했다. 스튜어트 왕조(1603~88)의 제임스 1세(재위 1603~25)와 찰스 1세(재위 1625~49)가 신교와 연합하면서 자신들의 정치 이상을 상징할 새로운 건축양식이 필요해졌다. 중세 가톨릭을 이끌던 고딕을 밀어내고 르네상스 고전주의가 선택되었다.

     

     

    이니고 존스. 그리니치 궁전. 영국 르네상스 건축은 이탈리아 고전주의를 직설적으로 모방하며 시작되었는데 이 건물은 그 시작을 알린다.

     

     

    이것을 이끈 것은 이니고 존스(Inigo Jones, 1573~1652)였다. 귀족을 대동한 1613~15년의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에서 르네상스 도서와 도면 등 많은 자료를 구입해서 돌아온 뒤 이를 연구해서 르네상스 양식의 작품을 남기기 시작했다. 초반 2~3년의 탐색기 동안은 영국 전통양식을 혼용해서 들로름식의 지역주의 양식을 시도했으나 곧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정착했다. 영국 르네상스는 존스 한 명이 이끌었을 정도로 그에 대한 의존이 절대적이며 내용에서도 이탈리아 표준 고전주의를 정확하게 구사하는 데 모든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 때문에 존스 개인적으로나 양식 전체적으로나 이렇다 할 독창성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대표작은 그리니치 궁전(Greenwich Palace=Queen's House, 1616년경~35)이었다. 그리니치 궁전은 영국 건축사에서 최초로, 그리고 갑작스럽게 고전주의 표준어휘가 등장한 건물이었다. 북쪽 면은 아직 전환기의 고민을 보여준다. 고전 어휘는 1층의 창 상인방에 쓰인 평아치 정도가 전부였다. 장식을 극도로 절제한 추상 평활 면은 이후 고전주의로의 정착을 예견하고 있지만 영국의 전통적인 계단을 덧붙인 점은 아직 지역주의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남쪽 면에서는 브라만테의 라파엘 하우스 모티브와 팔라디오의 빌라 모티브를 혼합하며 순도 높은 고전 어휘를 선 보였다. 1층은 북쪽 면과 유사하게 몰탈 선을 두껍게 처리한 돌쌓기와 평아치를 이용해서 러스티케이션을 암시 했다. 2층 중앙부는 이오니아식 오더 여섯 개로 이루어진 로지아로 처리했다.

     

     

    종교개혁과 독일 매너리즘

    독일은 세 나라 가운데 르네상스 건축이 제일 침체되었다. 개별 건물에 부분적으로 르네상스 어휘를 사용하는 정도였고 정식 양식운동으로서 르네상스는 미진했다. 독일 내부 사정이 제일 큰 이유였다. 종교개혁의 발상지로서 16세기부터 크고 작은 종교분쟁과 전쟁이 이어졌으며 1618년에는 급기야 대표적인 신-구교 전쟁인 30년 전쟁이 발발했다. 매너리즘의 조건인 ‘힘든 사회상황’을 대표하는 나라였다. 이 때문에 독일 르네상스는 매너리즘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이탈리아 매너리즘이 일탈이나 파격을 추구한 것과 달리 분산적 장식을 이용한 흥겨운 율동이 주요 특징이었다.

     

    프리드리히 수스트리스. 성 미카엘. 독일 르네상스 건축은 힘든 국내 사정 때문에
    매너리즘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독일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건물이다

     

    J. 하인츠. 아우구스부르크 병기고. 독일 매너리즘은 고전 어휘를 조각 내 사용해서 흥겨운 리듬감과 가벼운 장식 분위기를 보여준다.

    대표작은 프리드리히 주스트리스(Friedrich Sustris)의 성 미카엘(Sankt Michael, 뮌헨, 1583~97)과 J. 하인츠(J. Heintz)의 아우크스부르크 병기고(Zeughaus, Augusburg, 1602~07) 등이다. 성 미카엘은 비례를 무시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독일의 전통적인 다층 형으로 전체 윤곽을 짰다. 기둥 사이를 아치 창, 벽감, 막힌 벽 등으로 처리했는데 위아래가 달랐다. 수평선을 필요 이상으로 여러 겹 넣어 전체 윤곽의 수직 비례와 대비시켰다. 이탈리아 매너리즘의 반항과 부정과 달리 엇박자의 율동 느낌을 내면서 고전 어휘는 표준 건축부재보다는 기하학적인 장식부재에 가까웠다. 고전 어휘의 생명인 축조다움을 생략하고 판재를 오려붙인 것 같은 장식 느낌이 건물 전면을 지배했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posted by A-TACT A-tact
    2013.02.08 14:18 아름다운 주택이야기

     

     

    로마의 공화정 말기 때 사회가 문란해지고 독재 정치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정치 체제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제국 체제였다. 콘술을 선출하는 등 대중주의 정치가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킨 측면이 많기 때문에 강력한 1인 중앙 집중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기원전 63~서기 14)는 이런 기대에 잘 부응했다. 그는 공화정 말기의 혼란을 잘 수습하면서 기원전 27년에 황제로 등극해서 로마제국의 문을 열었다. 그 후 무려 41년을 통치하면서 제국의 기틀을 닦았다.

     

     

    제국의 성립과 아우구스투스의 건축

    건축도 중요한 통치수단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주택이라고 불리는 그의 황궁을 보면 웬만한 귀족의 주택보다도 소박하고 규모도 작았다. 이 주택은 팔라틴(팔라티노 언덕)이라는 로마 황궁단지의 시작을 알리는 건물이지만 이후 황제들의 화려한 황궁들에 비하면 너무 검소하고 소박해서 그의 생활이 얼마나 극기적이었는지를 잘 알게 해준다. 무엇보다 포룸 로마눔을 대거 정비하고 확장했다. 일상 시민활동을 위한 면적 확장에 더해 여러 신전을 세움으로써 로마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콩코르디아 신전 등 주요 대형 신전들은 대부분 아우구스투스 때 세운 것이다. 여기에 더해 임페리얼 포룸에 아우구스투수의 포룸을 더해 확장했다.

     

     

    포룸 로마눔 전경 - 아우구스투스는 포룸 로마눔을 정비, 확장했다 <출처 : Stefan Bauer at de.wikipedia>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선 속주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그였다. 서유럽 남부, 북아프리카, 오리엔트 등 여러 곳이었는데 가장 두드러진 곳이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남동부 등 서유럽 남부였다.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곡창지대인데, 이곳에 다리와 수로를 놓아 농업을 일으켜 로마의 식량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아를 지방은 대표적인 예이다. 님에는 가르 강을 가로지르는 가르 교라는 다리를 세워 교통망을 닦음과 동시에 상부에는 수로를 넣어 용수도 확보했다. 3단의 아치 구조로 길이 275m, 높이 49미터의 규모를 자랑한다. 님의 시내에는 메종 카레라는 신전도 세웠는데 로마 신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신전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토머스 제퍼슨이 특히 좋아했던 신전으로, 에트루스칸 신전을 기본 구성으로 삼아 수려한 그리스 코린트식 오더로 열주를 세웠다. 이외에도 아를의 원형극장은 폼페이우스의 원형 극장을 대규모로 발전시켜 로마 원형극장의 완성을 이루었다.

     

    가르 교 - 로마제국의 초대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공공건축을 크게 일으켰는데 제국 내 곡창지대에 세운 다리와 수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네로에서 콜로세움까지

    2대 황제 티베리우스는 건축적 역량을 자신의 이름을 딴 개선아치, 황궁, 그로토 등을 짓는데 사적으로 남용함으로써 실패한 황제가 되었다. 클라우디우스 때 로마의 젖줄인 아쿠아 클라우디우스를 세우고 로마의 주요 성문인 포르타 마조레를 세우는 등 잠시 회복했으나 그 뒤를 이은 네로에서 사적 건축은 최절정에 달했다. 황금주택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황궁을 축조한 것이다. 네로는 황실의 돈을 로마 시내 땅을 사고 황금으로 치장한 황궁을 짓는 데 탕진했다.

     

    이 주택은 사파리를 갖춘 50만 제곱미터의 대단지로 기둥 열로 이루어진 아케이드가 1마일이나 계속되었다. 황궁은 수 십 개의 크고 작은 방으로 채워졌다. 황금주택은 순수한 디자인의 관점에서 보면 예술성이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황궁 전체가 불규칙한 방이 자유롭게 이어지는 유기구성으로 이루어진다.

     

    유기구성은 그리스 건축에는 없던 로마만의 독특한 건축기법이며 이후 서양건축에서 인간의 감성과 욕망을 담아내거나 자연을 그대로 닮으려는 경향을 담당하는 기법으로 중요한 한 축을 이루게 되는데 이것이 최초로 완성된 것이 네로의 황금주택이었다. 이런 중요성을 갖는 황금주택을 설계한 것은 네로 자신이었다.

     

    도무스 트란지토리아 - 네로의 화려한 개인 황궁 가운데 하나였는데 볼트 천장에 그려진 장식이다.

    네로를 겪은 뒤 로마는 플라비우스 왕조로 넘어가는데 이 시기 동안은 로마 제국의 집단적 정체성이 확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을 대표하는 건물이 콜로세움이다. 베스파시아누스 때 짓기 시작해서 티투스 때 완공했으며 로마의 원형극장, 나아가 로마건축 전체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검투사 시합 같은 부정적 놀이에서 각종 정치집회와 문화행사에 이르기까지 로마의 집단욕망이 공공사의 형식으로 분출되는 통로였다. 지금 관점에서 보면 콜로세움은 여전히 부정적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당시의 관점에서 보면 대제국 로마의 거대 욕망이 자칫 개인사로 변질되어 타락할 위험성을 공공사로 바꿔 표출시키는 순기능도 가졌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콜로세움을 지은 뒤 로마제국은 2세기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콜로세움 - 로마가 최초로 집단적 정체성을 가진 시기에

    지어진 대형 공공건축물이다.

     

    콜로세움의 파사드 모습<출처 : wikipedia>

    5현제와 로마 건축의 전성기

    2세기는 로마의 전성기였다. 양자 상속제를 도입해서 황실의 핏줄을 벗어나 제국 전체에서 가장 능력 있는 사람에게 황제 자리를 맡겼다. 96년에서 18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5명의 황제가 이 제도를 이어가서 5현제의 시대라고도 불린다. 5현제 가운데 건축적 업적을 남긴 사람은 트라야누스하드리아누스였다. 차이도 컸다. 트라야누스는 철저하게 공적인 인물이어서 모든 치적을 제국의 공익에 집중한 반면 하드리아누스는 예술가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사적 욕망도 큰 인물이었다.


    트라야누스의 건축 업적 가운데 최고봉은 로마 시내에 지은 시장과 포룸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트라야누스의 시장과 트라야누스의 포룸이라고 부르는데 대제국 로마를 경영하는 수도의 심장에 걸맞은 각종 공공건물로 채워진 헤드쿼터였다. 트라야누스의 시장은 포룸에서 벌어지던 여러 도시생활 가운데 경제행위만을 따로 떼어 한 곳에 모은 전문화된 시설이었다. 지름 60미터의 반원형 안마당을 6층 높이의 사각형 방들이 돌아가며 에워싸는 구성을 했다. 이곳은 로마의 경제를 담당하던 심장부였다. 타베르나라고 불리는 로마의 사각형 가게들이 150여 개 입주했으며 이것을 감독 관리하고 지원하는 행정시설이 함께 들어갔다. 국가의 창고, 식량 배급청, 국세청 등이 대표적 시설이었다. 건축 구성도 실용적 목적에 맞게 처리해서 실 배치는 기능을 중시하여 일직선 복도를 따라 배열했다. 아치와 볼트 같은 실용 건축술을 동원하여 튼튼하게 쌓았으며 재료도 대리석이 아닌 벽돌을 사용했다. 트라야누스의 시장은 로마 벽돌쌓기 기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점에서 또 다른 중요성을 갖는다.

     

     

    트라야누스의 시장 - 5현제 나아가 로마건축 전체를 통틀어 공공건축을 가장 많이 시행한 황제인데 로마 경제의 심장부에 해당되는 시장을 닦았다.

     

    트라야누스의 포룸에서는 공공시설을 전문화한 뒤 기념비적 처리를 더했다. 시설을 신전, 바실리카, 도서관만으로 한정해서 문화적 집중도를 높였다. 바실리카는 시민들의 상거래와 소규모 집회 등을 위한 종합시민센터로 로마 건축에서 공공성을 대표하는 시설이기 때문에 들어가는 것이 당연했다 이것이 지나치게 실용성에 머무는 것을 경계해서 신전과 도서관을 넣어 문화적 품격을 높였다. 도서관이 들어간 점이 특히 중요했다. 그리스 도서관과 로마 도서관의 두 동으로 이루어지는데, 전쟁과 검투사 시합 같은 폭력으로 점철된 로마 사회에 지적 공공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기능을 했다.

     

     

    하드리아누스의 건축

    하드리아누스의 건축은 크게 보면 공공사와 개인사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보여준다. 제국 내 여러 곳에 도서관, 목욕탕, 포룸 등을 짓고 속주개발에서도 일정한 업적을 남기는 등 트라야누스가 했던 공공사를 이어받았다. 하드리아누스가 역량을 기울인 것은 사적 건축으로 판테온과 하드리아누스의 빌라를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판테온은 그리스 고전주의를 무척 사랑했던 예술가 하드리아누스의 기호와 안목을 잘 보여준다. 1층은 신상을 놓는 벽감이 들어가는데 그리스에서 직접 가져온 정교한 코린트식 오더가 주요 골격을 이룬다. 2층은 장식 패널로 마감했으며 3층은 로마의 최고 발명품인 돔 천장으로 덮었다. 접지하는 1층은 땅을, 천장을 덮는 둥근 돔 천장은 하늘을 각각 상징한다. 이 각각에 그리스 고전주의와 로마의 최고 발명품을 사용한 것은 상징성이 크다. 그리스 고전주의를 땅의 발판으로 삼아 하늘로 뻗어나가는 로마 문명을 받친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그리스 고전주의를 사랑했고 이것을 사적으로 사용했지만 그는 로마황제였고 로마 문명을 찬란하게 상징화하는 방식을 통해 이에 합당한 공적 책무를 다한 것이다.

     

    하드리아누스의 빌라 - 스스로 타고난 예술가였던 하드리아누스는 당시까지 축적된 제국의 다양한 건축술을 총 집대성해 대형 빌라단지를 축조했다.

     

     

    하드리아누스의 빌라는 그가 은퇴 후에 말년을 보내기 위해서 로마 근교 티볼리에 지은 휴양단지이다. 18제곱킬로미터의 넓이에 19개의 영역을 갖는 대단지인데, 공공성이 훨씬 강화되어 있기 때문에 네로의 황금주택 같은 비난을 피해갔다. 공공성은 로마건축의 다양한 축조술을 총 집대성한 방향으로 잡았다. 개인의 예술적 감성과 욕망에 맞게 공공성을 다양화한 것이다. 이 때문에 하드리아누스의 빌라는 일정한 작품성을 확보하며 로마건축을 대표하는 건물이 되었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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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08 12:34 아름다운 주택이야기

     

     

    이탈리아 고딕 역시 독일 고딕과 마찬가지로 어렵게 시작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독일보다 더 힘들었다. 로마네스크 전통 뿐 아니라 로마 고전주의의 본산이라는 더 큰 전통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프랑스 고딕의 국제주의 표준양식과 제일 거리가 멀었다. 로마 시내에는 고딕 성당이 단 한 채만 지어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고딕건축은 나름대로의 특징을 형성했다.

     

     

    프란체스코회와 도미니크회


    형성 과정에서 수도회의 역할이 중요했다. 중세를 대표하는 수도회인 프란체스코회와 도미니크회가 이탈리아에서 발생했다는 종교적 배경이 중요했다. 극기주의를 내걸었기 때문에 여러 부재가 구조적으로 얽힌 프랑스 표준 양식은 잘 안 맞았다. 수도회의 요구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탈리아만의 특징적 양식이 탄생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교회(1228~39, 1253년 봉헌)가 출발점이었다.

     

    1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교회 외관 - 고딕 어휘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프랑스의 유기구조로 발전하지 못하고 로마 기독교 전통에 맞춘 장식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2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교회 실내 전경 - 네이브 월을 단층으로 처리해서 초기 기독교건축의 구성을 더욱 단순하게 정리했다.

     

    고전 기독교의 잔재는 1랑식 단일 공간, 수평 비례, 벽의 이분법, 개구부 속으로 함몰된 벽 등이었다. 반면 리브 4분 볼트와 다발기둥 사이의 일치는 고딕 표준 양식을 잘 따른 것이었다. 고전 기독교의 특징이 더 강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기준에서 보면 고딕 건물로 볼 수 없으나 이탈리아에서는 고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선례로 프랑스의 앙제 성당 등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이탈리아 장인들만의 독창적 디자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볼로냐의 성 프란체스코(1236~50)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1279~) 등에서 반복되면서 이탈리아 고딕의 한 유형으로 정착했다.

     

     

    토스카나와 장식 고딕


    이탈리아 고딕은 지역적으로 한정되어서 토스카나가 제일 큰 흐름을 이루었고 베네치아가 여기에 견주는 정도였다. 토스카나는 13세기부터 이탈리아 고딕을 이끄는 중심지가 되었다. 피렌체가 중심 도시였으며 13세기 말에는 시에나가 라이벌로 떠올랐다. 두 도시 사이의 경쟁은 13세기말~14세기 이탈리아 고딕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실내 구성에서는 앞의 수도회 건축이 반복되었는데, 피렌체의 산타 로체(Santa Croce, 1300년경~), 시에나의 성 프란체스코(1326년 시작)와 성 도미니코(San Dominico, 1309년 이후 시작)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정면. 로마의 반원 아치를 주요 어휘로 사용하고 있으며 뾰쪽 아치도 중세답지 못하고 반원 아치에 근접하고 있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교회 실내 구성을 이어받아 이탈리아 고딕의 대표 유형으로 정착시킨 건물이다.

     

    로마 기독교 전통이 여전히 강세였다. 출입구와 네이브 월 등 실내외 모두 뾰쪽 아치가 아닌 반원 아치가 주요 모티브였다. 외관은 정사각형의 고전적 비례를 유지했고 뾰쪽 아치는 작은 조각물로 처리해서 소품처럼 사용했다. 네이브 월은 2분법이었고 크로싱 천장은 돔으로 덮었다. 네이브 천장은 그로인 볼트였지만 기울기와 천장 곡면 등이 돔에 가까웠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Sant'Antonio, 1230년경~1307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비잔틴의 돔 크로스(domed cross)형으로 전체를 구성했다. 내접형 그릭 크로스 가운데 중심과 옆 공간 네 곳, 총 다섯 곳의 천장을 돔으로 처리했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비잔틴의 돔식 바실리카 구성을 보여준다.

     

     

    14세기는 이탈리아 고딕의 전성기였는데 토스카나의 장식 고딕이 이끌었다. 로마네스크 때 장식 전통이 강했던 지역인데 이것이 고딕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탈리아 고딕의 두 번째 유형이었다. 프랑스의 기준에서 보면 고딕이 아니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이탈리아다운 고딕 양식이었다.


    피렌체 성당(1294년에 시작, 1357~66년 증개축)이 좋은 예이다. 구조 골격이 기둥이 아닌 벽체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고딕의 유기성을 거부하고 로마네스크의 물성에 머문 것을 의미한다. 창 면적을 최소화해서 돌 벽의 물성을 강화했으며 플라잉 버트레스를 세우지 않아서 건물 전체가 단순한 덩어리 느낌을 유지했다. 벽면이 많이 나오면서 장식을 쓰기 좋은 바탕 면이 확보되었다. 대리석의 색 차이를 이용해서 기하 문양을 새기는 토스카나 로마네스크가 반복되고 있는데 장식의 현란한 정도는 훨씬 심해져서 파충류의 비늘 껍질을 보는 것 같다.

     

    피렌체 성당 동쪽 성소 - 로마네스크 장식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리석을 이용한 현란한 장식 고딕의 정수를 보여준다.

     

     

    화가와 조각가의 참여


    14세기 장식 고딕을 이끈 현상 가운데 하나로 개인 예술가로서 화가와 조각가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이들이 성당과 교회 공사에 미술 부분을 담당하면서 건물은 화려해졌다. 프랑스 고딕의 조각 장식이나 독일 고딕의 프레스코 문양에 해당되는 이탈리아 고딕의 장식 경향이었다. 예술가를 놓고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다시 한 번 경쟁이 벌어졌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는 피렌체 성당과 산타 크로체에, 조토(Giotto)는 피렌체 성당에 각각 참여하며 피렌체의 자존심을 드높였다. 여기에 뒤질세라 시에나에서는 조반니 피사노(Giovanni Pisano)와 두초 디 부오닌세냐(Duccio di Buoninsegna)가 성당 공사에 참여했다.

     

    피렌체 성당 전경 - 로마네스크 장식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리석을 이용한 현란한 장식 고딕의 정수를 보여준다.

     

     

    오르비에토 성당은 건축물이기보다는 로렌초 마이타니(Lorenzo Maitani)의 미술작품에 가까웠다. 파사드는 반원 아치와 정사각형 비례를 기본 모티브로 삼아 로마네스크 골격을 유지했다. 소 첨탑 네 개가 파사드를 3등분 하면서 3랑식 실내 구성을 반영했고 각 베이마다 출입구와 지붕에 각 두 개씩의 삼각 박공을 넣었다. 이런 구성도 토스카나 로마네스크의 전형적 방식이었다. 벽체 구조라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넓은 면이 확보되었고 마이타니는 이 위에 화려한 성화를 맘껏 그렸다. 그림 이외에도 대리석과 금세공을 이용한 장식과 각종 조각 등을 더했다. 건물을 제치고 장식이 주인이 되었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15세기 거대주의의 문을 연 건물로 115미터 길이에 높이는 38미터에 달했다.

     

     

    오르비에토 성당. 건물이라기보다 로렌초 마이타니의 성화를 그리는 캔버스에 가깝다.

    15세기 거대주의


    수도회 건축도 14세기에 장식 고딕의 영향으로 화려해졌으며 대형화까지 함께 나타나면서 규모 경쟁이 일어났다. 피렌체의 프란체스코 교회였던 산타 로체는 도미니크 교회였던 산타 리아 벨라를 압도할 목적으로 시작해서 115미터 x 74미터의 전체 크기에 38미터의 높이를 가졌다. 규모 경쟁은 15세기에 더 심해져서 거대주의로 확대되었으며 중심지는 베네치아와 밀라노로 옮겨갔다. 피렌체에서는 르네상스 건축이 시작되고 있었다.


    밀라노 성당(1386년 계획 시작, 1572년 주요 부분 완공)이 대표적인 예였다. 처음부터 대작을 지을 욕심으로 1386년부터 건축가, 수학자, 화가 등 각 분야의 대표자들이 모여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건축가들은 한 곳이 아니라 볼로냐, 파리, 독일 등 여러 곳에서 초빙되었다. 논의는 1401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심미, 기술, 기능 등 많은 논제들의 논의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단연코 크기, 비례, 공간감 등의 규모 문제였다.

     

    밀라노 성당 전경. 15세기 거대주의의 대표적 예로 유럽 각국의 중세 거대공간 선례를 모아 72.9미터 폭에 107미터 높이로 세워졌다.

     

     

    파리에서 온 건축가는 프랑스 고딕의 표준방식을 주장했다. 독일에서 온 한스 팔러는 첨탑을 이용한 외관에서의 높이를 추천했다. 이탈리아 건축가들은 정사각형 비례의 광활한 공간과 기하학적 덩어리감 등 고전적 개념의 거대공간을 주장했다. 최종 건물은 이 세 경향이 혼재하며 하나로 합해진 결과로 나타났다. 5랑식에 전체 폭은 72.9미터였다. 네이브는 9베이 길이에 폭은 16.7미터, 천장 높이는 45미터로 프랑스와 독일의 기록과 맞먹었다. 크로싱의 천장 높이는 65.5미터였고 크로싱 첨탑은 107미터까지 올라갔다. 수직이나 수평 단독으로는 최고 기록이 없었지만 둘을 합한 전체 규모에서는 거대주의를 대표할 만 했다.

     밀라노 성당 측면. 플라잉 버트레스는 더 이상 구조 부재가 아니라 화려한 장식 부재로 변질되었다

     

    밀라노 성당의 뾰족한 첨탑 <출처:wikipedia>

     

    건물 골격은 뾰쪽 아치, 플라잉 버트레스, 리브 그로인 볼트, 다발 기둥 등 프랑스 고딕의 표준 어휘들로 짜여졌다. 이것들의 유기적 효율성은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시간도 너무 많이 흘러있었다. 초점은 거대주의를 과시하는 데 모아졌다. 외관은 수많은 뾰쪽 아치와 뾰쪽 삼각형으로 가득 채워졌고 플라잉 버트레스의 가닥 옆으로 수많은 소 첨탑들이 세워졌다. 이런 어휘들은 일차적으로는 장식 어휘였지만 대형화 경향을 돕는 역할도 함께 했다. 수직으로건 수평으로건 큰 것은 무엇이든지 사용되었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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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03 15:32 아름다운 주택이야기

     

    추운 날씨가 조금은 누그러진 지금

    보고만 있어도 그저 행복해지는 여

    름나라 인테리어 소개합니다.세계

     

    적인 태국의 휴양지 코사무이에 있

    는 이 빌라는 장,단기 임대는 물론

    개인소유도 가능하다고 합니다.코

     

    사무이는 유럽사람들이 선호하는

    휴양지라고 하는데요 그들의 선

    호에 맞게 이 곳 건축도 세련되고

     

    활기차게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

    닐듯 합니다.숨막힐듯한 일몰풍

    경을 배경으로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로 디자인된 인테리어로

    그야말로 휴양만을 위한 빌라인

    것 같아 더욱 가보고 싶은 마음

     

    이 드는 것 같습니다.

     

     

    Celadon Villa

     

    Photos courtesy of Luxury Retrea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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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2.03 14:51 아름다운 주택이야기

     

     

     

     

     

     

     

     

     

     

     

     

     


    ⓒ ArchDaily
    Architects: Bates Masi Architects
    Location: Bridgehampton, NY, USA
    Structural Engineer: Steven L Maresca
    General Contractor: Breitenbach Builders
    Landscape: The Sweetbay Group
    Area: 6,500 sq ft
    Year: 2011
    Photographs: Courtesy of Bates Masi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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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29 12:19 아름다운 주택이야기

    해안가 절벽위 절개지 위에 아슬아슬

    자리하고 있는 이 주택은 5개의 침실

    과 7개의 침대를 갖추고 있는 일종의

     

    리조트인데요 물론 개인소유도 가능

    하다고 합니다.아무도 찾아올것 같

    지 않은 절벽 맨 꼭대기에 이 집을

     

    지은 것은 환상적인 바다 전경을 만

    끽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암반을

    가리지 않고 그대로 벽으로 이용한

     

    것도 매우 독특한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는듯 합니다.커다란 바윗덩

    어리들과 날카로은 돌들이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실내로 들어서면

    아늑함이 느껴지는 주택입니다.

    캘리포니아 반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New York city-based studio Steven Harris Architects has designed the Casa Finisterra project.

     

    Photos by: Scott Fra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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