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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8 12:34 아름다운 주택이야기

 

 

이탈리아 고딕 역시 독일 고딕과 마찬가지로 어렵게 시작되었다. 어떤 면에서는 독일보다 더 힘들었다. 로마네스크 전통 뿐 아니라 로마 고전주의의 본산이라는 더 큰 전통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프랑스 고딕의 국제주의 표준양식과 제일 거리가 멀었다. 로마 시내에는 고딕 성당이 단 한 채만 지어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탈리아 고딕건축은 나름대로의 특징을 형성했다.

 

 

프란체스코회와 도미니크회


형성 과정에서 수도회의 역할이 중요했다. 중세를 대표하는 수도회인 프란체스코회와 도미니크회가 이탈리아에서 발생했다는 종교적 배경이 중요했다. 극기주의를 내걸었기 때문에 여러 부재가 구조적으로 얽힌 프랑스 표준 양식은 잘 안 맞았다. 수도회의 요구에 맞추는 과정에서 이탈리아만의 특징적 양식이 탄생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교회(1228~39, 1253년 봉헌)가 출발점이었다.

 

1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교회 외관 - 고딕 어휘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프랑스의 유기구조로 발전하지 못하고 로마 기독교 전통에 맞춘 장식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2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교회 실내 전경 - 네이브 월을 단층으로 처리해서 초기 기독교건축의 구성을 더욱 단순하게 정리했다.

 

고전 기독교의 잔재는 1랑식 단일 공간, 수평 비례, 벽의 이분법, 개구부 속으로 함몰된 벽 등이었다. 반면 리브 4분 볼트와 다발기둥 사이의 일치는 고딕 표준 양식을 잘 따른 것이었다. 고전 기독교의 특징이 더 강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기준에서 보면 고딕 건물로 볼 수 없으나 이탈리아에서는 고딕으로 분류될 수 있다. 선례로 프랑스의 앙제 성당 등이 거론되기는 하지만 이탈리아 장인들만의 독창적 디자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볼로냐의 성 프란체스코(1236~50)와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Santa Maria Novella, 1279~) 등에서 반복되면서 이탈리아 고딕의 한 유형으로 정착했다.

 

 

토스카나와 장식 고딕


이탈리아 고딕은 지역적으로 한정되어서 토스카나가 제일 큰 흐름을 이루었고 베네치아가 여기에 견주는 정도였다. 토스카나는 13세기부터 이탈리아 고딕을 이끄는 중심지가 되었다. 피렌체가 중심 도시였으며 13세기 말에는 시에나가 라이벌로 떠올랐다. 두 도시 사이의 경쟁은 13세기말~14세기 이탈리아 고딕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다. 실내 구성에서는 앞의 수도회 건축이 반복되었는데, 피렌체의 산타 로체(Santa Croce, 1300년경~), 시에나의 성 프란체스코(1326년 시작)와 성 도미니코(San Dominico, 1309년 이후 시작)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정면. 로마의 반원 아치를 주요 어휘로 사용하고 있으며 뾰쪽 아치도 중세답지 못하고 반원 아치에 근접하고 있다.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수도원 교회 실내 구성을 이어받아 이탈리아 고딕의 대표 유형으로 정착시킨 건물이다.

 

로마 기독교 전통이 여전히 강세였다. 출입구와 네이브 월 등 실내외 모두 뾰쪽 아치가 아닌 반원 아치가 주요 모티브였다. 외관은 정사각형의 고전적 비례를 유지했고 뾰쪽 아치는 작은 조각물로 처리해서 소품처럼 사용했다. 네이브 월은 2분법이었고 크로싱 천장은 돔으로 덮었다. 네이브 천장은 그로인 볼트였지만 기울기와 천장 곡면 등이 돔에 가까웠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Sant'Antonio, 1230년경~1307년)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비잔틴의 돔 크로스(domed cross)형으로 전체를 구성했다. 내접형 그릭 크로스 가운데 중심과 옆 공간 네 곳, 총 다섯 곳의 천장을 돔으로 처리했다.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비잔틴의 돔식 바실리카 구성을 보여준다.

 

 

14세기는 이탈리아 고딕의 전성기였는데 토스카나의 장식 고딕이 이끌었다. 로마네스크 때 장식 전통이 강했던 지역인데 이것이 고딕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탈리아 고딕의 두 번째 유형이었다. 프랑스의 기준에서 보면 고딕이 아니었지만 이탈리아에서는 가장 이탈리아다운 고딕 양식이었다.


피렌체 성당(1294년에 시작, 1357~66년 증개축)이 좋은 예이다. 구조 골격이 기둥이 아닌 벽체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고딕의 유기성을 거부하고 로마네스크의 물성에 머문 것을 의미한다. 창 면적을 최소화해서 돌 벽의 물성을 강화했으며 플라잉 버트레스를 세우지 않아서 건물 전체가 단순한 덩어리 느낌을 유지했다. 벽면이 많이 나오면서 장식을 쓰기 좋은 바탕 면이 확보되었다. 대리석의 색 차이를 이용해서 기하 문양을 새기는 토스카나 로마네스크가 반복되고 있는데 장식의 현란한 정도는 훨씬 심해져서 파충류의 비늘 껍질을 보는 것 같다.

 

피렌체 성당 동쪽 성소 - 로마네스크 장식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리석을 이용한 현란한 장식 고딕의 정수를 보여준다.

 

 

화가와 조각가의 참여


14세기 장식 고딕을 이끈 현상 가운데 하나로 개인 예술가로서 화가와 조각가의 등장을 들 수 있다. 이들이 성당과 교회 공사에 미술 부분을 담당하면서 건물은 화려해졌다. 프랑스 고딕의 조각 장식이나 독일 고딕의 프레스코 문양에 해당되는 이탈리아 고딕의 장식 경향이었다. 예술가를 놓고 피렌체와 시에나 사이에 다시 한 번 경쟁이 벌어졌다.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는 피렌체 성당과 산타 크로체에, 조토(Giotto)는 피렌체 성당에 각각 참여하며 피렌체의 자존심을 드높였다. 여기에 뒤질세라 시에나에서는 조반니 피사노(Giovanni Pisano)와 두초 디 부오닌세냐(Duccio di Buoninsegna)가 성당 공사에 참여했다.

 

피렌체 성당 전경 - 로마네스크 장식주의의 전통을 이어받아 대리석을 이용한 현란한 장식 고딕의 정수를 보여준다.

 

 

오르비에토 성당은 건축물이기보다는 로렌초 마이타니(Lorenzo Maitani)의 미술작품에 가까웠다. 파사드는 반원 아치와 정사각형 비례를 기본 모티브로 삼아 로마네스크 골격을 유지했다. 소 첨탑 네 개가 파사드를 3등분 하면서 3랑식 실내 구성을 반영했고 각 베이마다 출입구와 지붕에 각 두 개씩의 삼각 박공을 넣었다. 이런 구성도 토스카나 로마네스크의 전형적 방식이었다. 벽체 구조라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넓은 면이 확보되었고 마이타니는 이 위에 화려한 성화를 맘껏 그렸다. 그림 이외에도 대리석과 금세공을 이용한 장식과 각종 조각 등을 더했다. 건물을 제치고 장식이 주인이 되었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15세기 거대주의의 문을 연 건물로 115미터 길이에 높이는 38미터에 달했다.

 

 

오르비에토 성당. 건물이라기보다 로렌초 마이타니의 성화를 그리는 캔버스에 가깝다.

15세기 거대주의


수도회 건축도 14세기에 장식 고딕의 영향으로 화려해졌으며 대형화까지 함께 나타나면서 규모 경쟁이 일어났다. 피렌체의 프란체스코 교회였던 산타 로체는 도미니크 교회였던 산타 리아 벨라를 압도할 목적으로 시작해서 115미터 x 74미터의 전체 크기에 38미터의 높이를 가졌다. 규모 경쟁은 15세기에 더 심해져서 거대주의로 확대되었으며 중심지는 베네치아와 밀라노로 옮겨갔다. 피렌체에서는 르네상스 건축이 시작되고 있었다.


밀라노 성당(1386년 계획 시작, 1572년 주요 부분 완공)이 대표적인 예였다. 처음부터 대작을 지을 욕심으로 1386년부터 건축가, 수학자, 화가 등 각 분야의 대표자들이 모여 계획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건축가들은 한 곳이 아니라 볼로냐, 파리, 독일 등 여러 곳에서 초빙되었다. 논의는 1401년까지 계속되었는데 심미, 기술, 기능 등 많은 논제들의 논의되었지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단연코 크기, 비례, 공간감 등의 규모 문제였다.

 

밀라노 성당 전경. 15세기 거대주의의 대표적 예로 유럽 각국의 중세 거대공간 선례를 모아 72.9미터 폭에 107미터 높이로 세워졌다.

 

 

파리에서 온 건축가는 프랑스 고딕의 표준방식을 주장했다. 독일에서 온 한스 팔러는 첨탑을 이용한 외관에서의 높이를 추천했다. 이탈리아 건축가들은 정사각형 비례의 광활한 공간과 기하학적 덩어리감 등 고전적 개념의 거대공간을 주장했다. 최종 건물은 이 세 경향이 혼재하며 하나로 합해진 결과로 나타났다. 5랑식에 전체 폭은 72.9미터였다. 네이브는 9베이 길이에 폭은 16.7미터, 천장 높이는 45미터로 프랑스와 독일의 기록과 맞먹었다. 크로싱의 천장 높이는 65.5미터였고 크로싱 첨탑은 107미터까지 올라갔다. 수직이나 수평 단독으로는 최고 기록이 없었지만 둘을 합한 전체 규모에서는 거대주의를 대표할 만 했다.

 밀라노 성당 측면. 플라잉 버트레스는 더 이상 구조 부재가 아니라 화려한 장식 부재로 변질되었다

 

밀라노 성당의 뾰족한 첨탑 <출처:wikipedia>

 

건물 골격은 뾰쪽 아치, 플라잉 버트레스, 리브 그로인 볼트, 다발 기둥 등 프랑스 고딕의 표준 어휘들로 짜여졌다. 이것들의 유기적 효율성은 고려할 여유가 없었다. 시간도 너무 많이 흘러있었다. 초점은 거대주의를 과시하는 데 모아졌다. 외관은 수많은 뾰쪽 아치와 뾰쪽 삼각형으로 가득 채워졌고 플라잉 버트레스의 가닥 옆으로 수많은 소 첨탑들이 세워졌다. 이런 어휘들은 일차적으로는 장식 어휘였지만 대형화 경향을 돕는 역할도 함께 했다. 수직으로건 수평으로건 큰 것은 무엇이든지 사용되었다.

 글·사진 임석재 / 이화여대 건축학과 교수

posted by A-TACT A-t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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